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거 우즈 (문단 편집) == 아버지 “얼 우즈”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atic01.nyt.com/04woods600.jpg|width=100%]]}}} || || {{{#ffffff '''아버지 얼 우즈와의 즐거운 한 때'''}}} || 2006년 사망한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도 인생사나 교육 철학에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일단 얼 우즈는 보통의 스포츠맨 아버지들처럼 아들의 성공에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캔자스주의 첫 흑인 [[야구]]선수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는 [[미합중국 육군 특전사|그린베레]]의 일원으로 게릴라 특전 작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때 만나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남베트남]]군 [[중령]] Vuong Dang 'Tiger' Phong[* 후일 조사에 따르면 타이거 퐁 중령은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1년 뒤인 [[1976년]] 북베트남의 강제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에게 '타이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는 아들의 교육도 대화를 통한 부드러운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아들을 골프 챔피언이 아닌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학교 숙제를 해야 골프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골프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를 주었다.”라는 교육 철학을 밝힌 바도 있었다. 또한 이미지 훈련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시절 얼 우즈는 타이거에게 이미지 훈련을 시작했고, 불교식 훈련 방식을 통해 아들에게 겸손함과 정신적 강인함을 키워 주었다. 반면 기합이나 구타,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아들과 함께 하며 들려준 이야기들은 타이거의 성공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책을 통해 밝힌, 아들 타이거에게 들려준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한번 한 실수에 집착하다 보면 계속 반복하지만, 실수를 인정하면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니?''' >'''2등 한 게 어쨌단 말인가. 오직 한 사람 또는 한 팀만이 자신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감동적인 일이다.''' >'''불평은 사람을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유치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자세는 주변 사람들 사기까지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친구 배낭에 재미있는 문구 붙이기, 할아버지께 예고 없이 전화하기, 몰래 집안 일 도와 부모님 일손 덜어드리기, 노숙자 보호소를 찾아 오후 시간을 보내기, 입원한 어린이들과 놀아주기…. 이런 일들을 종종 하거라, 네게 큰 기쁨이 넘칠 것이다.''' 아버지 얼의 케어 속에 타이거는 역대 최고의 골프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훗날 그가 일으킨 스캔들을 아버지가 살아 생전 못 본 것은 다행이기도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 부자(夫子)의 관계는 지금도 가족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매우 모범적인 관계로 여겨진다. 2006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한 아버지에 대해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의 글을 올렸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훌륭한 롤(role) 모델이었다. 아버지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이룩한 위대한 일들을 생각하면 깊은 감명을 받는다. 당신은 훌륭한 아버지이자 코치였고, 멘토이자 친구였다. 당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